21년 정도가 직전의 방문 같다.
이번 이름이 바뀌었다고”상호 이력”을 한쪽 구석에 전시하고 있었다.
”MOther NAture”에서 머리 글자를 따서 통합의 이름을 만들고 여기에 각 지역별 영업점의 이름을 붙인 형식 같다.
청평에 영업을 위해서 다녀온 사람들의 전언에 의하면 거기에도 큰 나무가 있고 그 나무를 성지 순례하도록 신도들이 찾는다고 하지만 우연의 일치인가, 업장 곳 곳에 놓인 안내서에는 나무 순례 마케팅을 열심히 설명했다.
왠지 일본인의 “관광객”의 비율이 높던데… 그렇긴재밌는 점은 이 마케팅 캠페인이 현 운영 기업의 창업주가 아니라 창업 주부인을 향하고 있다는 점이다.
”강 건너 불”을 보는 입장에서 보면 묘한 현상이다.
각설. 이름이 어떻게 바뀌더라도 나에게는 그저”용평”이다.
역대 CI을 보면 내가 열심히 다닌 기간은 2번째, 3번째 구간이다.
화장실과 라커 룸에 쌍용니까 티의 티슈 박스가 놓였던 시대.정유 시멘트 증권 제지 등 지금 봐도 절대 무너지지 않는 안정된 업종으로 구성된 포트폴리오를 가지고 있었지만, 무너진 게 이상한 기업.용평이 돈은 안 되지만, 밑 빠진 구멍은 아니었다고 기억하고 있다.
차가 결국은 도미노의 출발점이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참, IMF로 국내 자동차 업체는 현차만 남았고 대우 자동차-기아 자동차-쌍차-삼성 자동차 모두 도산한 셈이다.
도산 직전, 승용 시장에 신규 참가한 나라 차와 삼성 차까지 역대 최고 경쟁률을 보였지만 헛된도 하나만 남기고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내수 규모를 감안하면 예정된 수순이었을 것이다.
현 소유자가 설치한 용평의 이력 패널에 용평의 오늘을 가능한 재벌 2세의 실명은 언급이 없다.
단 한번,”창업자의 마스터 플랜 스케치”라는 이름으로 언급되는 것은 있다.
그의 2세가 세운 작은 콘도가 동네에 있지만, 그 골목 속에 스키 선수 출신 사업가가 운영하는 식당이 있다.
촘촘히 겨울 스포츠 선수의 사진이 붙어 있는 식당 안에 붙어 있는 류헤이 창업주 2세의 사진이 용평과 김 씨의 인연을 희미하게 드러낸다.
사람처럼 재물도 모였다가 흩어지다.
앙드레김의 스키장 패션쇼 (1976.12.19)
앙드레김의 스키장 패션쇼 (1976.12.19)
앙드레김의 스키장 패션쇼 (1976.12.19)